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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 6

 [천하제일의 독공]
   
지은이 김용/이정원   |   출판사 김영사  |   발행일 2020년 0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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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가 12,800원11,520원 10%
마일리지 5% 640원
발행일 2020-05-25
ISBN 9788934991205
기타정보 번역서 | 360쪽
예상출고일 2~3일 이내 (근무일기준)
배송비 2,000원 (20,000원이상 무료배송)
   
일반
   
 

김용 유니버스의 결정판 《천룡팔부》 국내 최초 정식 출간 완역본
무협소설을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킨 불멸의 고전

‘중국문화사의 일대 기적’이라는 극찬과 함께, 전 세계 3억 부 이상 판매를 기록하며 중국문학의 금자탑, 중국의 셰익스피어, 중국의 톨긴 등으로 불리는 신필 김용. 그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방대한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 판타지”를 창조했다는 찬사를 받는《천룡팔부》(전10권)가 김영사에서 국내 최초 정식 완역본으로 출간되었다.
김용의 작품 중 연재기간이 가장 길었으며, 출간 후에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정과 첨삭에 각고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바로 《천룡팔부》이다. 지금껏 한국의 김용 팬들은 ?천룡팔부?를 정식 출간된 완역본으로 접한 적이 없었으며, 수정한 개정판의 출간은 국내 최초이다.
북송과 요나라의 분쟁기를 배경으로 단예, 허죽, 소봉(교봉)이라는 세 영웅의 모험과 격정, 의리와 기개, 사랑과 증오가 넘나드는 인간애의 대장정이 광활한 스케일과 유장한 호흡 속에 펼쳐진다. 더구나 불교, 노장사상, 신화, 문학 등 중국인의 독특한 사상과 역사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천룡팔부》는 수준 높은 문학성, 유려한 현대적 문체, 섬세한 심리묘사 등을 인정받으며 루쉰의 《아큐정전》을 대신하여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며, 미국 버클리대학에서는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며 교재로 선정했다.
김용의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고, 김용에게 많은 명예와 훈장을 안겨줬다. 중국에서는 성경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모주석 어록毛主席語錄?의 판매 부수를 갱신했으며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한국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며 전 세계에 김용의 작품을 연구하는 김학金學 바람을 일으켰다. 김용은 2018년 향년 94세의 일기로 세상을 타계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신필 김용 문학의 시원, 《천룡팔부》

김용의 작품 세계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세 시리즈 모두 김영사 刊)로 이어지는 사조삼부곡을 거쳐 《천룡팔부》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천룡팔부?는 김용의 후기작이지만 시대적 배경은 가장 앞서 있다는 점이다. 《사조영웅전》은 남송시대, 《신조협려》는 남송 말기, 《의천도룡기》는 원말 명초를 다루고 있으며, 《소오강호》도 명대 이야기다. 시대 흐름 순으로 작품을 써나가던 김용이 불쑥 과거로 돌아간 것이 바로 《천룡팔부》이다. 그렇다면 김용은 왜 가장 먼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을까?
김용이 신서문에서 “내가 초기에 쓴 소설에는 한족 왕조의 정통 관념이 강했다. 후기로 갈수록 중국에 있는 모든 민족이 동일하다는 관념이 보이는 건 내 역사관이 약간 진보했기 때문”이라고 썼듯이, 이 작품을 통해 한인과 거란인의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는 변화된 세계관을 거란인 소봉의 의협을 통해 보여준다. 따라서 《천룡팔부》는 김용 유니버스의 심오한 원점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천룡팔부》를 읽는 것은 김용의 진정한 첫 번째 작품을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채롭고 매력적인 인물 군상과 웅건하고 탄탄한 서사로 그려낸 대서사극

김용의 여타 작품들과 달리 《천룡팔부》는 단예, 소봉(교봉), 허죽이라는 세 주인공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등장하는 만큼 인물의 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펼치다가 나중에 필연적으로 응집되는데, 사소하게 지나치는 듯한 인물들의 내력이나 행동도 뿌리 깊은 인연으로 서로 얽혀 있을 정도로 서사의 탄탄함이 압권이다.
협객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봉, 어리숙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허죽과 단예를 비롯하여 다채로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천하 절세 무공의 소유자인 천산동모와 이추수, 독술의 달인인 정춘추, 철가면을 뒤집어쓴 유탄지, 야심가인 모용박과 모용복 부자, 무림 최고의 바람둥이인 단정순과 그의 여인들, 《신조협려》의 소용녀와 더불어 최고의 미녀로 꼽히는 왕어언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엄청난 속도로 휘몰아치듯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능수능란하게 인물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모으며 명료하게 정리하는 스토리텔링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유불선 사상으로 오롯이 녹여낸 인간세상의 희로애락

“문학은 인생을 풍족하고 다채롭게 변화시키며, 불교는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양자 모두 인생에 대한 탐구에 있다.”(김용, 이케다 다이사쿠와의 대담에서) 김용은 아들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불교에 입문하였으며 마침내 불법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고 스스로 밝힌다.
《천룡팔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김용의 불교에 대한 사상이 짙게 반영된 작품이다. 그는 불교에서 이르는 인과응보의 가르침을 소설 속 인물들의 얽힐 대로 얽힌 업보와 운명의 가혹한 사슬에 묶인 파란만장한 인생사에 투영시켜 설파하고 있다.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다 권선징악 같은 그저 그런 결론으로 귀결되는 일반적인 무협소설과 달리 불교를 비롯하여 유교와 도교의 철학적인 교훈을 제시해 독자들이 진지하게 인생에 대해 탐구할 수 있게 한다.
26. 맨손으로 곰과 호랑이를 때려잡다
27. 반란을 진압하다
28. 철가면을 뒤집어쓴 초개 같은 인생
29. 빙잠으로 연마한 장풍
30. 위기에 빠진 영웅호걸들
본명 사량용(?良鏞). 중국을 대표하는 무협작가이자 국제적인 언론인이다. 1924년 2월 6일 중국 저장성(浙江省) 자싱 부 하이닝 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국 대륙에서 성경보다 더 많이 팔린 모택동 주석 어록의 판매 기록을 넘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로, 무협소설을 일반 문학의 경지로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륙(중국 본토)에서는 1994년에 김용을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네 번째 순서를 차지하는 작가로 꼽았으며, 김용은 한 마디로 사업에도 대성공을 하고, 소설가로서도 대성공을 거둔 보기 드문 인물이다. 현재도 홍콩과 중국 전역에서는 최고의 인간 모델로 삼고 있다.

그는 화동 저장(浙江)의 명문인 해녕사가(海寧査家) 출신으로 수대에 걸쳐 인재를 배출하였는데, 특히 청나라시의 가장 유명한 시인이었던 사신행(査愼行)이 그의 조상이다. 당시 이 일가에는 “한 문중에 진사가 일곱이요, 숙질 가운데는 한림원의 관리가 다섯”이었으니 과거 급제한 인재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가히 상상할 수 있다. 김용의 바로 위 할아버지만 해도 장쑤성(江蘇省) 단양 현(丹陽縣)의 지현(知縣)의 지사을 지냈다.

본명은 사량용이다. 김용이란 필명은 본명의 마지막 글자인 '용'자를 둘로 나누어 만든 것이다.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이 전시 체제에 돌입하자 고향을 떠난 김용은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중국과 서양의 문화를 부지런히 공부했고, 특히 영어에 남다른 실력을 보였다. 그의 집안은 흔히 '해녕사가'라 하여 청나라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시인의 하나로 평가받는 사신행査愼行을 비롯해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가였다. 그가 훗날 홍콩에서 '명인 중의 명인'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룬 성취 외에도 집안의 내력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한다.

열여덟 살 때 훈육주임을 풍자한 글을 벽보를 통해 발표해 퇴학당했다가 교장과 동창의 도움으로 간신히 전학하여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으며, 열아홉 살 때도 역시 훈육주임에 반대하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열아홉 살 때 [동남일보]에 글을 발표하여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대공보」「상보」 등의 언론사에서 영어 전보 번역일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스무 살 때 구주중학교 (고등학교에 해당)를 졸업하고 [동남일보]에 「천 사람 중 한 사람」 이란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물한 살 때 중앙정치학교 외교과에 입학했다. 어릴적 꿈인 외교관이 되고자 하였으나 국민당에서 파견한 직업 학생들이 득실거리는 학교에 항의하다가 결국 스물두 살 때 퇴학당했다.

[동남일보]에서 영어 전보 번역일을 하다가 1947년 스물다섯 살 때 신문사를 사직하고 상해 동오대학 법학원에 들어가 국제법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 해 세계적으로 이름난 언론사인 상해 [대공보]에 취직해 전과 같이 국제 전보 번역일을 맡아, 반은 일하고 반은 공부하는 '반업반학'의 세월을 보냈다. 이듬해에 홍콩 [대공보]로 자리를 옮겨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서른 살을 전후해 요복란, 임환 등의 필명으로 영화평을 쓰면서 영화계와 친분을 맺기 시작했다. 「절대가인」이란 영화 극본으로 문화부가 주는 우수영화상을 받기도 했다. 1954년에는 직장 동료 양우생이 홍콩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무술 시합에 자극받아 [신만보]에 무협소설 『용호투경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1955년 서른세 살 때 마침내 김용이란 필명으로 [신만보]에 『서검은구록』을 연재하면서 마침내 무협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순전히 신문의 판매부수를 높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어 1956년 1월 1일부터 홍콩신문 [상보]에 『벽혈검』을 연재했고, 1957년 그의 출세작이자 최초의 장편소설인 『사조영웅전』을 같은 신문에 1959년까지 연재했다. 이어서 1959년에는 『설산비호』를 발표했다. 이 사이 1956년에 주매와 두 번째 결혼을 했고, 영화평도 꾸준히 썼다. 1959년에는 급기야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김용은 1955년부터 1972년 사이에 15권의 무협 소설을 집필하였다. 그의 소설은 홍콩은 물론 동남아 화교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공전절후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태국의 화교 신문은 홍콩판 신문이 비행기를 통해 날아오길 기다리지 못하고 불법 전신시설을 이용하여 당일 연재된 소설을 타전 받아 신문사 문 앞에 붙여 놓을 정도였다. 그리고 1959년에 홍콩의 일간지인 [밍파오(明報]를 창간하여 1993년 은퇴할 때까지 발행인겸 주필로 일하며 그의 소설들을 [밍파오]에 연재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무협소설은 동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어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해도 1억 부가 넘게 팔렸다. 또한 그의 무협소설들은 수십 차례에 걸쳐 영화와 비디오로 제작되었으며 컴퓨터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

김용의 일생은 중국 현대사의 압축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의 생활과 전란에 따른 피란, 그리고 각지로의 전전, 마침내 홍콩에 정착하기까지 그는 숨가쁘게 시대와 함께 호흡했다. 그는 언론을 선택했고 스스로 언론사를 창간하여 중국 정치사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렇듯 중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경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협소설을 역사소설 내지 정통 문학의 대열에 올려 놓았으며, 20여 년 전부터는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해 왔다. 그 자신은 무협소설을 호구지책으로 썼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젊어서부터 몸에 익힌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은 무협소설의 수준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사실 빈약한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명보]는 1년을 버티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명보]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원동력은 무협소설과 김용 자신이 직접 쓰는 정치 사설이었다. 무협소설의 연재는 상업적인 면에서, 정치 사설은 [명보]의 권위 수립에 큰 도움을 주었다. 창간과 더불어 『신조협려』가 연재되었고, 1961년부터 『의천도룡』가 연재되었다. 이어 『백마소서풍』과 『원앙도』도 연재하면서, [명보]는 발행부수 4만을 넘는 신문사로 성장했다. 1970년이 되기전까지 그의 신문사는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데, 그의 소설과 더불어 그가 쓴 중요한 정치사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국의 문화혁명 분위기를 예언하여 파장을 몰고 왔고, 등소평의 축출과 재기 등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미국과 베트남간의 전쟁 재개 시기도 정확하게 맞춰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언론이 된 것이다.

1969년 10월 24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던 『녹정기』는 1972년 9월 23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사이 김용은 그때까지 발표했던 자신의 무협소설들을 조금씩 수정했고, 『녹정기』의 연재가 끝나자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며 절필을 선언하였다. 1976년 54세에 아내와의 이혼, 그리고 잇따른 아들의 자살로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다. 1994년 김용은 약속대로 [명보]와의 모든 관계를 끊고 완전 은퇴를 하고 자신을 낳아준 고국 대륙으로 향했다. 절강대학과 영국, 홍콩을 왕래하며 역사연구 등의 생활을 했다.

'김학'이라는 본격적인 연구학문이 움직이고, 인터넷과 관련한 산업에 이르기까지 김용 소설은그야말로 21세기 문화 키워드로서 손색이 없다. 종이로 된 소설에서 영화로 그리고 TV 연속극, 전자게임과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현대 문화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소설만이 지닌 강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독특하고 다양한 인물개성과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 구성,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가 절묘한 조화,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문장, 중국 전통문화의 요소, 풍부한 인문적 소양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완성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김용과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현상'이자 '문화 키워드'가 되었다. 지식인을 비롯한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책을 읽으며, 그의 작품은 반세기 동안 시들지 않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 김용은 '천년강단'으로 유명한 호남성 장사시 악록서원에서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강연을 가졌다. 홍콩 당국으로부터 최고 훈장을 받았고, 그해 11월 베이징 대학에서는 그의 무협소설을 놓고 국제적인 연구토론회가 벌여졌다. 2002년 상해에서 브라질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와 대담을 갖기도 하는 등 두 방면에서 모두 남다른 성공을 거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김용은 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반환된 이후 대륙에 널리 알려져 김학(金學)이라는 그의 소설을 연구하는 학문이 생길 정도로 전세계의 존경받고 있다.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그의 소설을 교재로 사용하고 있으며, 영국여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는 등 그 명성은 계속되고 있다. 무협 소설의 대가 김용 작가는 2018년 10월 30일 향년 94세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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